
어제(2022년 10월 29일) 늦은 밤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핼러윈 행렬 중에 압사사고가 발생했다는 참사 특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기가 무색하게 1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죠. 말도 안 되는 대참사였습니다. 심지어 희생자는 대부분 10~20대의 꽃다운 청춘이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계속 특보가 보도되어 원인규명과 대책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원인이 무엇이든 누구의 잘못이든 희생자의 가족들과 희생자의 비통함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에 의한 압사라니요?! 그 안에서 얼마나 갑갑하고 무섭고 아팠을까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기가 막히는 참사는 다만 축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는 아닙니다. 만원버스나 관중이 가득한 경기장, 공연장 등 그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는 매우 힘들죠. 문제는 그곳의 환경(좁은 내리막길)과 사람들의 의식일 겁니다. 누가 걸어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을 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누구 하나가 넘어졌다고 하면 그 뒤의 사람들은 멈출 것이고 그럼 더이상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뒤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고 그래서 줄지어 같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도미노처럼 쓰러져 엉키면서 사람들의 무게에 깔려 호흡곤란(압사)으로 사망하고야 말았습니다.
가장 뒤에서 오는 행렬은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고 이에 물결처럼 떠밀리듯 계속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중간에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겠죠. 이것을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차가 꽉 막히는데도 뒤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앞으로 오다보니까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지요. '보이지 않는 곳' 그곳은 언제나 사각지대입니다. 휴대폰만 보며 길을 걷다가 잘못하면 맨홀에 빠지거나 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죠. 이 정도의 안전의식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원인 지하철에서는 넘어짐 사고같은 게 일어나리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만원지하철은 이태원 사고현장과 인파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모두 정지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끼임사고는 일어날 수 있지만 압사사고가 일어나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군인이 행군을 할 때 보면 대오를 맞춰 진군합니다. 군사 간 간격은 앞으로 나란히를 했을 때 서로 마주치지 않는 정도를 하고 있죠. 이것이 안전거리입니다.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 너무 가깝지도 않은 간격을 유지하며 행군속도를 적정히 하기 위해 "선두 반보"와 같은 구호를 뒤로 전달하며 걸음수를 조정합니다. 앞의 상황을 모르더라도 간격을 유지하며 전달을 잘하면 대열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누군가 재빠르게 앞의 사고를 알리면서 "앞에 사고났습니다! 정지하세요! 뒤로 가셔야 합니다! 뒷쪽에서는 모르니까 뒤로 계속 전달해주세요!!" 라고 조치(통제)를 했다면 이렇게 큰 사고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시끄럽고 경황도 없고 당혹스럽고 하기 때문에 선뜻 이런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척 안타깝습니다.
소잃고 외양간을 고쳐봤자 그 소는 돌아올 수 없고, 아무리 빠른 후회라도 이미 늦은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후에 예방과 대책을 견고히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지만 중요한 건 순간대처능력입니다. 오늘의 사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CPR(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생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설마 내가 사는 곳에서 지진이 일어날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긴급상황에서는 손과 팔꿈치로 항상 머리와 가슴을 보호해야 뇌상과 고립시 호흡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낙법이 이와 비슷하죠.
혹 남의 일인 것으로만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요? 어떤 사고든 그곳에 있었던 희생자는 나자신이 될 수도 있었고 내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함께 슬퍼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대신했던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컨대 단풍이 절정인 명산에서 전례에는 없었을 만큼 등산객이 물밀듯 몰린다면 그 정상에 있던 등산객은 추락을 할 수도 있는 위험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도로에서 사고가 일어나거나 갑작스럽게 정체가 되면 앞차들은 비상등을 켜며 뒷차에 신호를 보내줍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뒤로 신호를 주어 연쇄추돌 같은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죠. 내가 그 상황을 안다고 해서 나만 알고 지나치면 그 위험은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깜빡이를 켜는 이유는 내 방향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로 나를 방어하는 효과도 줍니다. 도로주행시험에서는 안전거리(차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감점항목이 없습니다. 아예 실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안전거리 즉, 질서를 중요시합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는 앞지르기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위험하기 때문이죠. 이태원 사고에서도 그 현장이 내리막길이었습니다. 만약 일반 평지였다면 희생자의 수는 현저하게 적었을 겁니다. 도로주행연습시 우회전할 때도 굉장히 서행하거나 일시정지를 해서 안전을 확인하고 가는데 간혹 뒤에서 오는 일반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무리하게 앞지르기를 하기도 합니다. 답답하시겠죠? 하지만 이건 첫 운전자에게 안전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교육의 일환입니다. "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당신은 실전에서 저렇게 운전하지 말고 조금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운전하기 바랍니다."와 같은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그게 강사의 참된 역할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일반운전자에 대한 폄하는 아님.)

앞으로도 어디에서든 사고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재해든 인재든 위험이 따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이 비극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떠실지 감히 짐작도 못하지만... 저도 20대초반의 조카가 있습니다. 남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아픔과, 유가족들의 비통함에 형용할 수 없는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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