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2023년 7월에 방영된 영화 패러다이스(Paradise)는 사람의 수명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소재가 제법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인간존엄에 대한 교훈도 있지욤. 런닝타임은 약2시간. 그 줄거리와 결말, 그리고 감상문 시작합니다.ㅎ
애온은 수명이식회사로, DNA가 맞는 사람이 수명을 주면 그 수명을 받은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는데... 수명을 제공한 사람은 그만큼 더 늙게 되고, 수혜를 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젊어지게 됩니다. 과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일단 말이 안 되는 설정이지만 충분히 흥미롭군요.ㅎ
즉 7살짜리 아이가 60세 어른에게 20년의 수명을 이식해주면 아이의 외모는 27살이 되고, 어른은 40세로 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연령이나 기억(사고능력)은 그대로인 상태고요.
15만유로면 한화로 약2억2천. 영화에서는 15년 수명의 값이 저 정도로 측정되는군요. 이렇게 수명기증자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남주인공 막스는 플래너로서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애온의 창시자는 조피타이센(회장)이라는 나이 든 여자입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요? 불가능한 일이지만 발상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좋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존엄적(도덕적) 회의가 심할 수 밖에 없겠네요. 누가 자발적으로 이런 기증을 하겠습니까? 다 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죰.
노인이었던 여성이 거의 아가씨가 됐습니다. 그래 꿈만 같겠다?ㅋ 이건 마치 옛날에 돈을 받고 피를 팔던(헌혈) 것과 비슷합니다. 장기기증 등의 유상 기증은 존엄적으로 모두 다 불법이죠. 저는 근데 그 부분을 조금 다르게도 생각합니다.
이런 애온의 비윤리적 수명이식에 대해 반대여론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당연한 거죠.) 그리고 강경반대파인 아담이라는 군사조직이 애온의 수명이식에 대해 테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담의 이론은 간단합니다. 돈으로 사람의 목숨을 산다는 건 불법이고 비인간적인 인간존엄에 대한 말살이라는 것이죠. 부자는 얼마든지 젊어질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몸(수명)을 팔아서 사는 세상이 될 수 있기에 막으려는 것입니다.
애온소속의 수명이식 플래너 막스에게는 엘레나라는 약혼녀(?)가 있습니다. 둘은 서로의 일을 하면서 사랑하고 잘 지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이들의 집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고급진 주택이었는데 이 집을 사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였고, 엘레나는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은행의 말을 믿고 그저 형식적으로 담보를 제공했었는데...
그게 바로 자신의 수명이었습니다. 무려 40년. 화재보험사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이 되고 화재로 집이 손실되자 은행에서는 채권 집행을 단행합니다. 엘레나의 수명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죠. 근데 이걸 완전히 강제라고 할 순 없습니다. 본인이 담보를 세운 것이었잖아요?
청천벽력같이 엘레나는 40년이라는 수명을 빼앗겼습니다. 아니 채무불이행으로 강제 집행되었습니다. 거의 60~70대의 노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엘레나는 약혼자(?) 막스에게 자신에 대해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라는 동시에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끼며 마음과는 다르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막스는 괜찮다며 지금 이 모습도 사랑하는 그때의 너와 다를 게 없다고 달래보지만 그리고 진심이었지만 젊음을 빼앗긴 엘레나에게는 모든 게 다 원망이겠지요.
길거리의 요 꼬맹이는 수명이식을 받은 아이 같습니다. 나이에 비해 말이나 태도가 상당히 어른스럽고 싸가지가 없지요.ㅋ 아마 돈이 많아서 다시 아이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나 보지요? 이런 게 가능한 세상이 바로 이 영화의 세상입니다.
막스는 어떻게든 엘레나의 젊음을 돌리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마지막 수단으로 다른 사람의 수명을 훔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애온의 회장인 조피타이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조피가 엘레나의 수명이식을 받아서 젊어졌기 때문이죠.
조피타이센 납치에 성공한 막스는 엘레나와 함께 숨어서 무허가로 수명이식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고, 조피의 경호대는 이 납치범들의 단서를 찾기 위해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엘레나가 이렇게 된 것은 참 딱한 일이다.. 너무 안 됐다.. 인생을 빼앗겼다.. 이런 말들이 들리자, 조피의 경호대장은 논리적으로 답하지요. 맞습니다. 누가 인생을 담보로 걸고 호화 아파트를 사라고 했습니까? 자신이 결정했으니 그 책임도 자신의 몫인 것이죠. 권리와 책임은 결국 하나입니다.
무허가 수명이식소를 찾아 떠난 막스 일행이 차량 검문을 당하는데... 막스는 한 가족을 총으로 위협해서 그 곤경을 피합니다. 사실 엘레나는 남의 수명을 가지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를 했습니다. 그냥 자기가 그 꼴로 살면 되는데..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막스가 엘레나를 계속 설득시키면서 수명이식을 하기 위해 끌고 가는 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엘레나가 싫어했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막스는 원래부터 늙은 엘레나도 괜찮다고 했지만 엘레나 스스로가 너무 괴로워하기에 엘레나를 위해 수명이식을 단행하려 한 것입니다. 엘레나도 분명 안돼.. 안돼.. 이건 옳지 않아.. 하면서도 다시 젊어지고 싶었을 겁니다. 그게 인간의 양면성이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납치해온 사람이 엘레나의 수명으로 젊어진 애온의 회장 조피가 아니더군요. 조피와 꼭 닮은 딸이라는 것입니다. 막스는 이건 조피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서 엘레나에게 계속해서 수명이식소로 향하자고 하고...
엘레나는 조피의 딸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정확히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막스와 대립하자, 막스는 이 사람이 조피든 조피의 딸이든 어차피 조피의 핏줄이니 책임이 있다면서 만약 조피의 딸이라면 딸은 다시 조피에게 수명을 받으면 된다고 화를 내며 설득합니다.
그러던 중 조피의 딸 마리(납치된 아이)는 둘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하지만 숲속에서 길을 잃고 수렁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 한 것을 엘레나가 구해줍니다. 엘레나는 어찌 되었든 진정으로 마리를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한 건믈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들에게 무장을 한 낯선 이들이 찾아옵니다. 이들은 애온의 반대파인 무장단체 아담이었죠.
아담의 대장은 이들에게 뜻밖의 얘기를 들려줍니다. 집에 화재가 생긴 것과 보험을 받지 못한 것, 그래서 엘레나가 담보로서 40년이라는 수명을 조피타이센에게 빼앗기게 된 게 우연이 아니라 모두 계획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엘레나가 조피타이센과 DNA가 일치하는 흔치않은 사람이기에 조피가 막스를 고용해서 막스는 처음에는 엘레나의 수명기증을 설득하기 위해(막스는 이 내용은 모르는 상태에서) 엘레나에게 접근했다가 사랑에 빠진 것이었는데,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른 계획(불을 내고 담보를 받아 집을 사게 하고 불을 내는)을 세워서 수명을 뱃은 것이었습니다.
조피의 딸 마리는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풀어달라고 애원하지만 아담 대장은 네가 직접 잘못한 건 없지만 잘못된 일을 벌이는 가족을 말리지 않은 책임이 있으니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봤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간접적인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는 것처럼.
젊은 모습이 된 진짜 조피와 경호대는 막스일행과 아담이 있는 건물을 추적하여 에워쌌습니다. 반면 아담은 막스에게 애온일당(조피와 경호대)을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어서 조피를 죽이고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눈치챈 조피의 경호대장 덕에 조피는 무사할 수 있었는데... 조피 경호대에도 아담의 스파이가 한 명 숨어 있었습니다. 아담 대장은 계획이 실패하자 스파이에게 조피를 사살할 것을 명령했지만 그걸 또 경호대장이 눈치까고 제지하는군요. 그러고는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총격전에서 벗어난 막스 일행. 조피의 딸 마리는 엘레나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알이 없습니다. 마리는 수렁에서 엘레나가 구해줬었죠? 이제야 엘레나는 극도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저런 식의 마리의 모습이 하나도 안타깝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막스가 엘레나를 말리는 상황으로 전환됐지만...
엘레나는 수명이식을 단행하기로 결심하고 막스를 차에서 내리게 합니다. 내리게 한 방법은 막스를 총으로 위협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어 내리지 않으면 스스로 죽겠다고 표한 것입니다. 엘레나는 이제 죽을만큼,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수명을 되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만약 이런 수명이식이 가능하다면 실효성이 있다고 봅니다. 정말 죽을만큼 구질구질하게 힘든 삶(시간)을 몇 년 포기하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거액의 돈을 받는다면 저는 그 수명기증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아! 지금은 아니고요.ㅎ 훨씬 젊었지만 돈이 없던 그 시절에 말이죠. 나이가 들면 돈이 있든 없든 그건 값으로 환산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하죠.
우리집이 너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직장구하기도 힘든데 내 나이가 많이 젊다면 조금 더 늙어지고 돈으로 보상받으면 안 되나요? 5년동안 5천만원 모으기도 힘든데 수명 5년에 5억을 준대요... 그럼 할만하지 않을까요? 5억이라는 돈을 주면서 수명기증을 요구한 사람이 나쁜 사람일까요? 강제로 빼앗는 게 아니잖아요? 충분한 의사표시로써 결정하는 것이죠.
다시 영화로 와서... 조피의 딸 마리는 엄마에게 돌아오게 되지만 이미 수명이식을 당한 상태입니다. 엘레나에게 빼앗긴 것이죠. 이건 진짜 훔친 것입니다. 마리가 엘레나의 수명을 가져간 것도 아니었고 어찌됐든 조피도 담보로서 수명을 가져간 것이었지(계획적인 범죄는 따로 처벌을 해야겠고요.) 엘레나와 막스처럼 납치해서 훔쳐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리가 엘레나의 수명을 엄마가 빼앗은 것이니 엄마 조피타이센에게 자신이 엘레나에게 뺏긴 수명을 엄마에게 돌려달라고 부탁해봅니다. 이게 맞죠. 그래야 모두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젊어진 엄마 조피는 그럴 생각이 없군요.
자기보다 늙어버린 딸 마리에게 한다는 말이 기증자를 찾아보자... 기가 막히는군요.! 역시 권력과 젊음은 부모자식 간에도 나누기가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저 가증스런 엄마 조피는 진정한 악녀이자 범죄자입니다.
한편 엘레나는 막스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다시 젊어진 채로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땅히 누릴 자신의 평화를 되찾은 것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엘레나는 그저 마리의 삶을 망친 도둑일 뿐입니다. 마리는 큰 잘못이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결말같지만 엘레나의 범죄행각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요. 다만 조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멀리서 엘레나를 지켜보는 옛 약혼자 막스. 시간이 한참은 지난 것 같군요. 막스는 아담의 조직원이 되었습니다. 애온의 수명이식 시스템에 맞서 인간 존엄성을 위한 단원이 된 것이죠. 이건 영화고 절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할 만한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장기는 물론 혈액까지 유상기증은 모두 불법입니다.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되죠. 왜 그렇게 해놓았을까요? 무분별한 기증, 편법을 이용한 기증, 약한 자에 대한 탄압, 강요... 이런 것들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함입니다. 뇌사상태에 빠지거나 해서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대가없이 기증하는 것만 인정이 되죠.
하지만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어야 하는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가는 사회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게 정말 몸뚱이 밖에 없어서 현실에 허덕이다가 죽음으로 몰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신성한 노동의 대가가 투자나 이익창출(영업)보다 턱없이 부족한 세상, 신분제의 폐지가 된지 100년도 넘었는데 버젓이 보이지 않는 신분의 장벽이 있는 세상,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사라지지 않고 노블레스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책임의식은 뒷전인 세상. 이런 세상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어찌 살아야 합니까?
차라리 전 장기이식 등의 유상기증을 어느 정도 합법화했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분명 시행착오나 문제가 발생하겠죠. 그러니 그 대비책을 철저하게 세워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기증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장기기증의 합법화가 아닙니다.!!! 좀더 평등하고 함께 잘 잘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되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자는 것입니다.(지향이라는 것은 굳이 무엇을 어떻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그게 바로 영향력이고 밑거름이 됩니다.)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치 담배를 파는 상점이 있고 금연을 안내하는 보건소가 있듯이 영화에서는 애온이 있고 아담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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